커피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보였지만 언제나 관심뿐이었는데
어쩐일인지 이번에는 당근에서 커피머신을 구입했다며 커피를 마시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이 오래된 기계는 대부분의 모델이 밀라노 근처에서 제조되어
높은 품질을 유지하며 1991년 출시 이후 홈 바리스타들 사이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반자동 머신이라고 한다.
그러니 물건 하나 사는데 이것저것 따지기 좋아하다가 항상 포기해 버리는 그녀같은 사람이
이 클래식한 10년이나된 고물머신을 왜 5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데려왔는지 대충 알만하다.
오래된 물건에 대한 알듯모를듯한 로망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은가
30년이 넘은 오래된 책들을 이사할때마다 버리지도 못하고
결국 이고지고 이사하는 나같은 사람처럼 말이다.
어찌됐든 그녀가 이탈리아에서 10년전에 건너왔을
이 오래된 정통 에스프레소 기계로 라떼 한잔을 내려주겠노라는 그럴듯한 말에
할아버지 머신의 실력이 얼마나 클래식한 커피의 향기를 내줄지 내심 기대하면서 한달음에 기꺼이 달려갔다.
5만원에 당근에서 데려왔다는 머신의 외관은 작고 아기자기한 요즘의 가정용 머신들과 다르게 크고 묵직했다.
심사숙고 끝에 집으로 데려온 이 고전 머신을 그녀는 부품 하나하나 소중하게 대하며
하나하나 닦아 내더니 정말 방금 공장에서 나온 머신같다는 말은 누가 들어도 거의 뻥에 가깝지만
그녀가 얼마나 닦아댔는지 무광 외관이 유광처럼 참 반짝반짝한다.
5만원에 데려왔지만 전압이 맞지 않아 도란스를 2만원에 별도 구입했으며
뭔가 아쉽다며 수리 전문가에게 데려가서 전체 체크를 한번 받느라 5만원의 추가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수리 전문가에게 이 늙은 할아버지 머신기계는 길어야 1년 살면 오래사는거라며
그래도 가기전까지는 잘 쓰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결국 5만원에 당근에서 구입했지만 한잔의 만족스러운 에스프레소를 내리기 위해서
내일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것없는 기계는 7만원의 비용을 더 지출해 몸값이 12만원이 되었다.
그래도 이 할아버지 머신의 주인은 뭐가 좋은지 혼자서 열심히 유리잔을 닦으면 연신 싱글벙글이다.
이건 뭐 본인이 좋다고 하니 나로서는 그냥 맛있게 라떼 한잔 얻어먹으며 '잘했다' '맛있다' '멋있다' 말을 연신
내뱉어 주었다.
어딘지 바보같은 비용만 빼면 이 할아버지 에스프레소머신이 내려주는 에스프레소 한 잔의 맛은
여름에 내내 이집으로 와서 먹고 싶을 만큼 맛이 좋다는 말은 진심이다.
내 생각에는 이 머신의 주인은
아마 주말 내내 라떼 위에 하트를 그려낸다던가 고양이를 그려낸다던가
곰돌이를 그려낸다든가 하는 일로 정신없이 가지고 놀다가
고양이라도 하나 그럴듯하게 그려내면 아마 다시 연락이 올 듯 싶다.
'내가 그린 고양이 그림 좀 구경하러 오소'



